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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카페 메뉴판 SAMPLE 6

마슷따 2022. 6. 10. 08:41

 

 

▶ 개인 연성, 마법사의 약속, 샤이무르. 

 

 

샤일록의 손이 컵 표면 위를 오르내렸다.

 

잘 닦인 유리잔은 은은한 조명을 받아 빛이 났다. 늘어놓은 것들은 가지런하다. 반사하는 빛은 그리 밝지도 않았지만, 어둡지도 않아서.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뜬 그는 비스듬하게 바에 기대는 대신 천을 아래로 내린 후 조용한 주점 내를 한 번 돌아보는 쪽을 택했다. 사람이 오지 않으려는 모양이라면, 오늘은 이르게 닫아도 좋을 거라는 판단이 서기 쉬운 날이었다. 건국 축일. 종교의 기념. 다양한 것들이 있으나 사람들은 결국 낭만을 찾았다. <거대한 재액>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살아남아가며 인간이고 마법사고 너나할 것 없이, 가끔은 현실과는 먼 낭만을 현실에서 찾기 위한 시선을 흐트러뜨리기에 바쁘지 않았던 한 해였다.

 

한 해? 너무나 작은 단위이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언젠가 돌 하나를 남기고 육신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릴 마법사라는 종족은 이 어찌나 긴 날을 찰나와 같이 여기는가. 바에서 걸어 나온 남자는 숨을 짧게 내쉬었다. 따뜻한 공기와는 달리, 바깥은 그야말로 겨울이었다.

 

겨울의 정취는 진부하다. 그러나 진부하기에 고아한 맛이 있었다.

 

샤일록 베넷은 분명, 풍경을 담아 한 모금으로 만들 수 있다면 겨울은 그리운 맛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 매섭지 않은 부드러운 눈은 과연 누군가 만들어내는 걸까. 아니면, 그저 자연의 선물일까. 품지도 않은 의문을 부러 올리며 조용한 자리. 은은한 향취처럼 돌아가는 LP판의 오래된 선율이 다리 근처를 맴도는 기분이 들었다. 부드러이 내리 감겼던 눈이 다시금 떠오른들 여전했다. 보송보송한 것이 떨어지는 주제에, 차가운 것. 그대로 몸을 묻어버리거든 그대로 숨이 꺼질지 모르는 모순. 보이는 것과 다른 매서움은 언제나 위험했으며, 모든 것은 서지 않은 날을 두르고 있었다. 아아, 감상적이어라. 그렇지도 않으면서. 여느 때와 다름없는 미소가 가벼이 입가에 드리워진다.

 

누군가의 축일,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성인성자의 희생은 수도 없이 봐오지 않았던가. 그들의 말로는, 그들의 뒷면이라는 건 결국 기록된 것 이상의 문제였다. 후대에서는 그 모든 사실을 덮어내더라도 빌미를 삼아 저희의 입맛대로 요리한다. 날카로운 언어가 몇 번이고 오르내리며 아니었을 이들의 흔적에 유난히 패인 자국을 남기는 삶. 관조했다 여긴다 한들 본디 손님을 맞는 입장에서야 손을 뻗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위험하다면 그마저도 즐긴다. 당장 한 치의 앞도 모르는 게 삶이었다. 마법사라 한들 그를 모르지 않는다. 삶이 하나의 기록이라면, 그 기록 안에 이미 있을지 모르는 것일 뿐. 정말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가느다랗게 떨어진 시선이 기울어진다. 눈은 내리고 있다. 분명, 발목 근처에도 오지 못하고 흐트러질 것이다. 간단한 통계. 누군가 그걸 깨뜨려준다면, 그걸 즐길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부러 확신을 내어둔다. 아닐 수 있더라도. 그러나 이 모든 건 바뀌지 않는다.

 

노련함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이미 알기에, 포석을 깔아두고 기대하지 않는 것. 자신하지 않는 것. 그러나 그 모든 바탕에는 자신이 있다. 변하지 않을, 즐길 수 있는. 그러므로 않는다 한들 않는 게 아니기도 하지.

 

문을 내리고 돌아가자고, 결국 그런 결론이 서서는 바깥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둔다. 불을 하나, 하나, 느린 손으로 끄고. 타오르는 기름 등을 간단히 덮어 끄는 손길마저 유려하다. 분명 손길이 눈에 보이거든 곡선이겠지, 아니. 유선형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샤일록이 마지막 불을 끄는 순간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알고 있었나요?”

 

확인도 하지 않은 주제에, 그는 안으로 들어선 이에게 말을 던졌다. 분명 고개를 기울이리라. 참으로 얄미운 남자는 입 꼬리를 끌어올린 채 물을 터였다.

 

“그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어 있는 의문이지?”

 

그러나 그의 말을 물음이라 표현하는 건 물음에게 분명히 실례일 거라고 그는 곧 생각해낸다. 언제나 그랬지만, 그는 참으로 얄미운 사람이었으므로.

 

“아니면, 의문이 아니라 네가 생각할 수 없는 확신을 안겨주길 바라는 건지도 몰라. 욕망이 있다면 고스란히 토해내도 될 테지만, 그 욕망을 인지하는 상태로 한 꺼풀 덮어두는 것. 그리고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조절 자체의 미학인지, 너의 이데아가 향하는 방향인지는 나도 알 수 없네.”

 

이미 다 끈 불, 어둑어둑한 가게 안에서 샤일록은 등을 돌리지 않았다. 문을 연 남자는 그럼에도 클로즈를 알려오는 분위기 사이, 자신을 들인 채 문을 닫아냈다. 의자를 빼어 앉는 손은 아무렇지 않았다. 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파이프를 들어, 입에 문 샤일록이 숨을 들이듯, 내쉬듯. 그 조용한 침묵 사이. 무르가 웃었다.

 

“파헤쳐주길 바란다고 말하는 건 즐겁지 않아? 온 태도로 호소하지. 그렇지만 파헤치는 데에도 속도가 있잖아. 너무 급하면 화를 낼 거야, 너무하지.”

 

상대를 향한 말이었으나 그는 가감 없이 말했다. 그런 탓이었나. 누군가 그를 두고 참으로 무례한 남자, 라고 칭했던 적이 있음을 그는 문득 떠올렸다. 그게 언제였는지는 몰라도. 늘 그랬으므로. 아마 최근이어도 과거여도 무관할 거라 생각한 남자는 파이프의 연기를 한 번 안으로 들이고 나서야 등을 돌린다.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마주하는 두 시선이 우스웠다. 후. 소리가 나도록 깊게 뱉어낸 연기를 받아낸 남자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였다. 마치 이가 익숙하다는 듯 느껴지기도 했고, 혹은 저 또렷한 시선이 또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건지도 모를 터였다.

 

“맞아요. 너무하죠, 당신의 이야기에요.”

“네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그래도 네가 그걸 싫다고 할 일은 없잖아.”

 

아니야? 하고 묻는 대신 오만하게도 웃어 보이는 무르의 입가는 어둠 속에서도 여실하게 올라간 채였다. 얄미움이라는 단어가 사람이 된다면 필히 이 남자일 것이라고, 잔잔하게 흘러가던 감상이 죄 흐트러진 채 멈춰 바로 앞만을 보게 하는 상대를 앞에 둔 남자는 눈을 휘어 호선을 올릴 뿐이었다. 샤일록 베넷은 저 지점을 알고 있는 무르 하트가 싫었다. 그러나 그 말은 즉, 결국 그를 좋아한다는 지점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성립하지 않는 어떠한 명제. 

 

“눈이 꽤 많이 오는 모양이네요?”

“아아, 확실히 보기 드물 정도야. 발목까지 오는 일은 드물지. 이렇게 가느다란 눈인데도. 누군가의 장난인지도 모르지만 장난이라 해도 관심을 가질 정도는 아닌걸.”

“이런, 그건 또 예상외군요. 당신이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전혀 흥미가 없다는 듯, 문장의 말미에 가서는 단박에 맺음을 두던 남자를 두고 고개를 끄덕인 샤일록이 옆으로 걸어왔다. 부러 두는 것들이 하나하나 흐트러져 스러짐을 바라보는 건 모호한 고양감이었다. 시선을 내리고, 올리고. 고스란한 모호함 속의 한 가운데에서 그가 물었다.

 

“보다시피 오늘은 폐점이에요. 알고 있겠지만.”

 

보고 있잖아요? 하고 덧붙이지 않았음에도 무르는 샤일록의 표정에서 그 덧댐을 읽어낼 수 있었다. 미소로 마주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웃고 있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보기에는 좋지, 그 너머를 번거롭게 해석해내야 한다는 게 대화에서 보이는 하나의 알고리즘 파악과도 같아서. 그가 어깨를 으쓱이는 모양은 생각 이상으로 과장된 양 보였다.

 

“그건 무관해. 나의 친구, 샤일록. 네가 내게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이어지는 목소리가 참으로 확신에 차 있기에, 다시금 파이프의 끄트머리를 입에 물었던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았다. 다시금, 이었다. 길게 뱉어낸 연기는 바로 앞에서 흐트러지는데, 연기를 뱉고. 표정을 다시금 올리기 전까지의 간격. 형용할 수 없는, 정의 바깥의 표정이 곧 미소로 탈바꿈하는 순간을 엿본 이는 의문처럼 탐구욕을 내세웠다. 그러나 아직 그의 턴은 돌아오지 않았다. 샤일록이 온전하게 웃으며, 마음의 창이라 불리우는 것 따위는 호선 사이로 숨긴 채 말했다.

 

“글쎄요. 싫어졌다고 한다면?”

 

의문처럼 그려올린다고 한들, 그 음성 끝에 매달린게 물음표가 아닌 온점이라는 것 정도는 모를 수 없어서 소리 내어 웃어버린 무르가 몸을 일으켜 손을 뻗었다. 두 고개를 마주했다.

 

“나를 찰 거야?”

 

그 행동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없다고 변명하는 일은 하지 않겠지. 변명을 붙이는 것만큼 드러내는 행위가 될 테니까. 하지만 좋아. 내가 그러자고 한다면? 너는 어떻게 할 거지? 막힘 하나 없는 목소리가 속삭이듯 울렸다. 계산식을 내세우는 듯한 언어의 사이에서 샤일록은 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