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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슷따 2023. 12. 31. 02:18

 

장르 비공개 및 리네이밍 연성교환 작업본 일부 발췌

 

 

 

 

 

추를 매달지 않았음에도 흔들리는 저울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자문한다.

 

애초에 무수하게 매달고, 덜어내던 손이 지금이 기다랗게 일자로 된 선을 두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뻔 하지 않은가. 되돌릴 수 없는 파란 따위가 지난 자리를 더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아야 옳다. 잠시 휘저어지고 휘둘렸다면 다시 두 발을 세웠을 적에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기는 것이 몇 배나 낫다는 걸 모를 수 없었으니까. 색이 다른 두 눈이 느리게 끔벅거린다.

 

깊게 숨을 들이고 뱉는 사이.

 

이 간극이 유독 길게 느껴진다면 역시 이는 기우일까.

 

비정상적인 열감이 어깨 위로 덕지덕지 들러붙은 무언가의 감각. 비스듬하게 깬 이성은 바로 옆 자리를 굳이 바라보지 않아도 의식하게끔 만들었다. 깔끔하게 털어내는 방법을 쥔 사람이기에 하는 고뇌였다. A는 제가 하는 이 고뇌를 망설임이라 해도 좋은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부드러운 어감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저희에게 허락되었는지, 아닌지. 그는 몰랐다.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와 나는 각자 서 있는 하나의 존재라며. 상반된 것만 같이 굴더라도 그러하다며. 겹쳐 묶일 수는 있더라도 굳이 우리라는 단어를 두지 않은 남자는 비스듬한 사선으로 사고한다. 그의 손이 괜스레 주억여졌다. 가느다랗고 큰 손은 주욱 펴지고, 다시 쥐는 무의미한 행동 사이. 빼곡하게 끼어드는 것은 B라는 사람을 향한 명명백백한 죄책감이다. 들숨 한 번으로도 환기할 수 없는 무게가 목덜미를 더듬거렸다.

 

피부를 대려거든 다시금 대고도 남을 거리.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깔끔한 퀸 사이즈 싱글베드는 한참이나 흔들리던 이음새들이 더 헐거워졌다는 양 끼익, , 소리를 냈다. 그는 제 비스듬하게 기댄 자세를 고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충분히 밝은 빛으로도 수면에는 제법 방해가 될 것을 알아서였다. 잠시 지난 매트리스의 기울임 따위에도 B의 감긴 눈은 미간을 살짝 좁히다가도 이내 조금 더 그늘을 찾아 몸을 당겼다. 충분히 나란한 거리. 가까스로 피부가 닿지 않을 정도로만 A의 쪽으로 기울어진 고개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눈이 있다.

 

귀애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아니지만…… 궤가 다른 것은 명백하다.

 

지워낼 수 있는 자리를 곱씹으며, 그저 내어다 주는. 그러나 잡아 줄 일은 끝내 없을 손은 딱 가벼이만 오르내렸다. 붉은 머리카락은 이제 그나마 가신 열을 따라 조금이라도 달라붙지 않는다는 양. 뺨에 닿는 대신 조금이나마 움츠러든 어깨와 베개에 닿아 사락, 사락, 공백에 뒤척임으로 남았다. A. 오직 그를 위해 꺼진 적 없는 등만이 머리 위에서 그늘을 드리웠다. 간단한 행동 하나 결정하지 못 하는 것은 이러한 감각이었던지. 한 존재의 해방을 바라는 이가 혀 위에 올린 것이 명령이라는 것은 과연. 기승전결이라는 것이 퍽이나 존재는 할는지.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 입술은 관성처럼 호흡을 둘 뿐이었다.

 

실제로는 수 분, 수 초도 되지 않을 결론은 참 선명하게 남는다.

 

그래, 그럴 생각이었다면 그래야 맞다, .

 

덩그러니 남은 결론을 미루는 사이, 고작 그 잠시의 소음에 잠을 깬 그녀는 굳이 제 두 눈을 뜨지 않기로 했다. A는 고르던 숨이 흐트러짐을 알았다. B는 조금 더 자연스레 제 두 눈을 닫는 것으로 이 순간을 방관했으나, 참으로 당연한 사실을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내리감긴 눈꺼풀의 안쪽에서부터. 밝은 빛에도 어딘가 서늘하게, 닫힌 시야가 난반사했다.

 

 

당사자는 방관자가 될 수 없다, 는 어떠한 명제가 빙 돈다.

참을 놓을 수 없는 어떤 일이 현재에 깜박거렸다.

 

 

 

 

󰌘

 

중략

 

󰌘

 

 

 

 

< >의 입지를 생각한다면 외근 정도야 늘 있는 일이었다.

 

그중 리더의 직위라는 사람이라면, 보편적인 기업이나 체계에서는 그나마 바깥으로 덜 나서는 사람일 텐데. < >은 달랐다. 오죽하면 대부분의 일이 그의 손을 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으니. 그런 의미에서 외근 자체가 특별한 건 아니라는 일이였다. 흔치 않다고 하기에도 뭣하고, 참 여럿에게 공평할 만큼이나 바깥으로 뻗는 무언가. 그러나 굳이 다른 이들의 조합이 아닌 AB. 단 두 사람으로만 이루어진 외근은, 나름 아주 자그마한 차이라 한들 무게가 달랐다. 경중 자체가 다르게 느껴지는 일임은 수가 없다, 이 말이었다.

 

분명 이르게 쥔 종이에 적힌 건 그럴싸한 일이었다.

 

간단히 넘길 수만 있다면, 단순한 살인 사건으로 눈을 가릴 수 있을 법한 뻔하디 뻔 한 이야기. 그러나 그만한 데에 그쳤다면 애초에 눈길조차 줄 일이 없었을 테다. 리더는 잠시 제가 읽었던 문장을 곱씹었다. 틈을 찾아내는 데에는 이골이 난 생이었다. 멸한 것으로 남는 공백은 깨끗하지만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모든 포장은 한 순간이다. 이를 아는 사람이었기에 A의 눈은 쉽사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행간에 숨겨져 있는 탐탁찮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나면, 이는 참으로 그럴싸한이야기일 뿐이었다.

 

A는 목덜미가 싸하게 내리는 감각을 기억했다.

 

단순한 것과는 다른 탐탁찮은, 그러나 제법 말끔한 포장. 과연 어떤 목적으로, < >에게 이어질 손을 탔을까. 이를 가늠하는 것만으로도 스멀스멀 피로가 어깨를 눌렀다. 멀리 바라보는 눈조차 바로 아래 그늘을 진다. 누군가의 시선 하나를 빌리더라도 평범해 보이는 장소. 이는 A에게 전달된 그 자체만으로도 치밀함을 방증하는 셈이었다. 그는 교묘하게 맞물리는 꼭짓점을 하나, 하나. 검지 끝으로 눌러 흩어 놓았다.

 

누군가 짜 놓은 덫에 보란 듯이 걸어가는 건 아닐까.

 

언뜻 과언조차 되지 못할 생각이 선회한다. 이는 B 역시 어렵지 않게 품을 생각이었다. 목적지 근방에 발을 들이자마자 그녀는 아주 조금의 앞에서, 차분하게 내린 경계가 그의 눈에도 들었다. 거리는 고요하고, 공평하게 시간은 흘렀다. 과연 이 걸음 사이사이에 놓인 것들은 리더를 꾀어내기 위한 목적성이 있을지. 아니면 그저 단순한 무게를 빙자하여 너와 나를, 혹은…….

 

각자 제 이름들을 여기저기에 두고 바삐 움직일 법한 두세 명의 이름을 고스란히 떠올려 보던 그가 가벼이 고개를 털었다. 건물 사이를 빠져 나오자 훅, 바로 옆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나부끼는 붉은 색채를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돌렸다. 익숙하면서도 형용하기 어려웠던 것은 평범했던 자리를 지나 본론에 들어서면. 그제야 멸해진 무언가와 같이 멀끔히 사라졌다. 촘촘하게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는 적당히 사람이 오가는 번화가였다. 군데군데 살짝 가로수와 가로등 따위에 그늘진 부분은 존재했다지만, 굳이 골목까지 발을 뻗지 않는다면 넘실대는 불온함을 단번에 찾아냄이 도리어 어려웠다.

 

사람의 접근을 막은 티가 나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 그 안의 텅 빈 1 층 자리의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쥔 손이 돌아갔다. 보존된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 B의 미간에도 작게 균열이 일었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A를 비호하듯 반걸음 정도는 제 몸을 앞에 두고 있었다.

 

그 작은 폭을 남자는 잘 알았다. 이는 분명 리더가나 집단의 일원이 아닌, 그저 개인을 대하는 행동이라고. 그걸 감출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B는 분명 목소리를 내어 자신을 보호하겠노라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을. 그는 알았다. 그렇다면 저는 과연 어디에 있어야 할까. 아주 고요하게. 그러나 순환하는 것처럼 깊게 숨을 들이고, 내쉬는 호흡이 빙글빙글 돌았다. A는 그녀의 뒤에서 굳이 나서지 않았다. B는 이를 그의 다정이라 여겼다.

 

시선은 높으니 어렵지 않게, 아주 조금 뒤라 한들 시선을 옮겨 이리저리 살피던 눈이 느릿하고 명료했다. 상황의 앞에서 숨기지 않는 B의 행동을 굳이 곱씹는 것도, 염두에 두는 일도 그는 하지 않았다. 일반인을 보호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동을 제삼자가 보았다면 아이러니함이든 위화감이든 느꼈을까. 잠시 의문은 깊숙하게 돌지만 그게 고작이었다.

 

모를 일이었다. AB는 제법 그런 것들과는 다르다고, 저희 역시 그리 여기고도 남을 사람들이었으니까. . 상념이 끊겼다.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서는 몸은, 저 뒷모습은 아마 당연히. 사람이 아닌 도구가 쓰여야 함이 옳다 여겼을 게 선했다. 사실이었다. 처음 외근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황 자체를 판가름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걸 A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B는 이미 안다는 듯 상황을 통제해냈다. 언제나의 일이었다지만 새삼스럽게 말이다.

 

그는 B의 일처리를 믿었고, 잘 아는 사람이었다. 몇 마디 되지 않은 대화 사이서도 두 사람은 어련히 해야 할 일을, 써야 할 손을 써 두었다. 감식을 위한 움직임조차도 아직은 손을 대지 않도록, 그가 도달한 이후에. 살핀 이후에나 건드리도록 보존된 자리에서 떠올릴 일인가, 문득 누가 걸어낸 제어인지 모를 생각이 생각의 기로를 막았다. 현실 탓이었다. 마치 경계 당하는 것이 이것과 퍽 흡사한 감각이었던가. B는 짧게 고민했고, 이내 결론을 내렸다.

 

경계가 아니라 거부에 가까운, 그런 부하와 거북함에 가깝다고. 고작 그 작은 움직임에도 불쾌함은. 마치 구체화된 무형의 그늘처럼 스멀스멀 일렁거렸다. 사건의 중심부로 향할수록 강해지는 건 썩어가는 피의 냄새. 그 이상으로 피부 위에 들러붙었다 떨어지는 듯한 눅눅한 것은 장소 자체의 문제인지, 아닌지. 확연히 구분하기 어려운 데가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오늘 보고가 올라온 사건의 현장이라기에는 과할 정도로 군더더기가 많았다.

 

다행히 늦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많다는 건 그만큼 손을 타지 않았다는 뜻일 테다. B는 지금 이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을 취할 줄 알았다. 이를 안도감이라 해도 좋은 건지, 아닌지. 이 환경 자체에 대한 인식보다도 피로를 하나 더 얹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분명히 평범한 것이리라고. 한 사람의 마음이 사람을 향한다는 건 그런 것이었으니. 그나마의 그나마라 한들 양호한 것이 손에 꼽힌다.

 

말씀하셨던 부분과 같이 상황 자체의 보존을 우선 요청했습니다만, ……혹 문제가 있으십니까?”

 

조금 전. A는 제 고개를 살풋 끄덕이기는 했다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하지 않았다. 같은 것을 볼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B는 그가 가진 고유의 시선 자체는 따라갈 수 없었다. 이는 반대로도 매한가지였다.

 

사람의 눈은 그 자신의 사고를 따라가는 면이 있지 않던가. 잠자코 기다리는 대신 적절한 발화를 놓는 편이 조금은 더 알맞은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방관자이기 이전에 보좌의 역할이라 여겼던 그녀로서는 적절한 행동이었다. 침묵이 더 이어지고 나서야 A는 입을 열었다.

 

우선 감식을 넘기기는 해야겠군.”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기는 하지만 우선 객관적인 판가름을 두겠다는 이야기였다. 탐탁찮은 것이 손끝에, 가시나 거스러미처럼 걸리는 것만 같았다. 타인이나 제삼자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게 있다, 는 걸 아는 사람들. 그 특유의 민감함이 발목을 잡은 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치 감각하고, 사고한다면 섣부른 건 오히려 내맡겨지는 게 아닐까. BA가 부르기도 전에 그의 옆에 자리했다. 아주 조금 몸을 낮추어 속삭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 말들은 감추는 듯, 마는 듯. 언저리를 빙빙 도는 소리를 냈다.

 

자리의 현 상태를 유지하는 걸 최선으로 감식을 요청해.”

 

현장 감식의 인원을 최소화해 달라 요청하겠습니다.”

 

B는 즉시 그녀의 사고에서 정리를 마쳤을 터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좋겠구나. 해야 할 수습이 있다면 내가 한다. 그리고, 가지런히 놓아두는 것과 퍽 다르지 않았던 음성.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내는 듯한 목소리가 대뜸 멎었다. 무언가 덧대어, 하나 더 지시하려던 순간이었다. 골목이라 해도 아직 해가 떠 있는 시간. 아무리 빼곡한 자리라 한들 빛이 들지 않는 곳은 없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누군가 그의 눈 위로 제 손을 끼워 덮어내는 것처럼.

 

, 반전되는 시야에 찰나, A가 제 움직임을 멈췄다. 두 눈이 미간을 구기고, 가느다랗게 좁혀도 달라지지 않는 것을 본다. 바로 앞에 차오른 것은 순수한 암흑. 어둠. 사람의 시야를 뒤흔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덮고도 남아버리는 것이 형태를 가지고 잇다는 양 살랑살랑, 부피를 채운다. 조금 전까지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처럼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눈 바로 앞까지 뻑뻑하게 끼어 있다고 느끼게 되거든 눈꺼풀을 깜박이는 행위 자체에도 거북함 따위가 절로 치밀어 목을 막았다. 오소소 피부 위로 오르는 것은 거북함이다. 이런 것을 두고 있다고는 하지 않을 것을 그는 알았다. 그러나 없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들만이 여기에 걸음하지 않았느냐고. 목을 빌어, 입술 바깥으로 토해지지 않은 말이 목 안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수 분도 지나지 않았을 텐데. 치미는 것은 어떠한 형태를 가진 채로 혐오를 휘둘렀다. , 거둬내는 것처럼 움직인 손이 딱. 부딪쳐 약한 파열음을 내었다. 시야는 다시금 제자리에 놓였다. 깜박. 깜박깜박. 다른 색의 두 눈이 빠르게 끔벅여지고 나면 고요하게 내리 눌렸다. 제가 쳐낸 손의 주인은 A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잔잔하게 놓인 목소리에도 약한 굴곡 정도가 남아 있었다.

 

“-……?”

 

고스란히 닿는 건 걱정이다.

 

전혀 다른 인식을 취했다는 것 정도는 모를 수도 없었다. 어디에서 뒤틀린 건지, 어디에서부터 그리도 덮인 건지. 어쩌면 그 잠시, 헤집어지는 감각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하게 되었는가 까지……. 몇 초도 되지 않을 그 짧은 시간마다 작은 단위로 뚝, , 나뉘듯 토막이 난다. 목까지 틀어 채웠던 거북함은 조금 전까지의 모든 게 잠시나마 존재했음을 방증했다. 목덜미가 싸하게 눌려 굳는다. 누가 손을 끼워 헤집어 놓았을 적이 딱 이러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끼어든 착시라고 하기에는 명료하게 자리한 잘못되었다는 감각이 사람의 숨을 지핀다. 잠시의 공백을 두고 나서야 여유는 돈다. 얕은 한숨에 어깨가 내렸다. B는 그제야 저 역시 온전히 숨을 놓았다.

 

미안하구나. 나한테 보인 것과 네가 보고 있던 게 차이를 낸 모양이다. 조금 더 확인했어야 했어. 사과하마.”

 

괜찮습니다.”

 

A의 나직한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고의가 아니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 B에게는 이가 충분했다. 도리어 마음에 걸리는 건 당신이 그렇게 보일 정도의 상황이었다고. 아주 입 바깥으로 뱉을 수 없는 것이 괜한 갑갑함 따위로 남는다지만, 거기까지의 용기는. 피차 가지고 있지도. 생각하지도 않은 것에 가까웠다. 현실은 바로 앞에 있는데 늘 감정은 한 겹 아래에 무겁도록 눌려 감추어지고 만다. 이가 마땅하다며 속살대는 삶이었다. 꽤나 단정한 대답이었다지만 A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뻗은 손은 명백하게 사람을 살피기 위한 것일 텐데. 겨우 내보인 마음이 손바닥 아래에는 조금이나마 눅진하게 들러붙어 있을 것이 선했다. 모든 말과 행동은 자신에게서 떨어지고 나면 제 것과는 별개가 되고 말았다. 다르게 다가가는 것 역시도 제가 신경을 써야만 하는 것이 된다, 이 말이었다. 그러나 B라는 사람은, 존재는 A의 순간을 명백하게 볼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알고 있기에 조금 더 마음이 쓰였을까, 아니었을까. 그는 확답을 내릴 수 없을 터였다. 그저, 평범한 사람 하나를 대하는 것처럼. < >의 리더가 아닌 ‘A’ 개인을 대하고 싶은 마음으로, 연정으로 괜찮다 화답하였을 사람을 바라만 보는 눈은 복잡하게 엉키고 난반사한다.

 

갑자기…… 사라지지는 말렴.”

 

분명한 무의식이었다. 어쩌면 읊조림에 가까운 것. 그저 한 걸음 떼어내며, 저도 제가 그렇게 말했을지. 훗날 곱씹거든 명백히 이다, 아니다를 말할 수 없을 그런. 자각하지 못하는 말을 앞에 두고도 B는 내색하지 않았다. 사라질 듯한 무게는 마치 당신께서 두고 계심에도 왜 그렇게 말씀하시냐고. 그리 되묻는 대신 침묵을 택한 덕이다. 일자로 다물린 입술 안으로는 차마 토하지 못한 숨이 감정을 머금은 채 변질했으나 토해내는 건 어디에도 없었다.

 

사적인 침묵을 빙자한, 공적인 대화가 이후에는 가득 몸을 틀었다. 유연하게 이어지는 만큼 매끄럽지 못했다. 그러나 어색할 만큼, 흐름이 무색할 만큼이나 시간은 금세 지난다. 지시는 완벽했고 연락 역시 깔끔하게 떨어지는 데에는 다소의 시간이 걸렸다지만, 그럴 값어치가 있다는 것 정도는. A의 반응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한 셈이었다. 느지막한 때에 걸쳐 결과를 보기 위해서는 두 나절 정도는 걸릴 모양이었다. 오가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고, 혹시나 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머무름이 몇 배나 나은 상황. 같은 판단을 내린 BA는 별 다른 합의를 두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여기서도 조금 이동하기는 해야 했다지만 < >에 비해서, 결과를 받으러 움직이는 거리가 압도적으로 가까웠다. 수 놀음을 하지 않더라도 보일 단순한 효율. 마침 근처이기도 하겠다, 바로 받아내는 것이 분명. 처리에 드는 그 중간 시간을 들이는 것에 비해 낫다는 결과를 굳이 몇 번이고 답안 위에 붙여다 놓는 손은 어딘가 변명처럼 느껴졌다. B의 고개가 그사이 새카맣게 변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기다랗게 놓인 가로등은 사람을 따라 깜박였다. 아무런 말 하나 없이 그녀는 빛 그림자의 쪽으로 A를 두며 걸었다. 참으로 자연스럽게. 마치 누구라도 당신을 사랑한다면 이러했을 거라는 것처럼.

 

이를 모르지도 못 하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