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00:00 심야식당

심야식당 자유오더 SAMPLE 3

마슷따 2022. 6. 10. 03:08

 

 

▶ 개인 연성,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 베른플란. AU.

 

플란츠의 시선이 빠르게 깜박거렸다. 베른은 조금 웃는 낯이었다. , 그런 걸 가지고 이렇게 고민하고 그러는 건지. 하지만 어쩌다 보니 어떠한 의미에서는 유유상종이라고 해도 좋을 사람들끼리 만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과하는 상황에서 웃고 있는 건지? 의문이 무표정에 가까운 잔잔함 위에 오르자 그가 플란츠와 꼭 비슷한 태도로 말했다.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양, 그러나 목소리만큼은 바로 앞에 전해질 정도의 크기로.

 

그거 그대로 돌려서 내 아버지, 라고 하기도 뭐한 사람이 앞으로 손댈 수 있거든. 이제 좀 잠잠해졌었는데 이번에는 나도 감이 안 와.”

 

소탈하다 싶을 정도의 목소리는 저와 비슷한 걱정을 할 법한 사람의 것이어서 그는 왜 베른이 으레 보일 법한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라, 도리어 잘 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럼 미리 사과하는 걸로 하고 이건 넘겨도 괜찮겠는데. 그렇게 간단히 일축해도 되는 부분이라고는 사실 차마 생각되지 않았다지만, 플란츠는 어쩐지 그래도 될 것 같은 근거라고는 하나 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아. 어쩌다 뭐 이런 배경이 끼리끼리인 사람들끼리 만난 건지 감이 오질 않았지만 그렇게 걱정이 남는 건 아니었다.

 

가장 처음의 본론으로 내어둔 것들이 살가워서. 마음이 괜히 조금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의 감각인지는 모르더라도 아마 둘 모두. 그저 두 사람의 고개가 너나 할 것 없이 끄덕여졌다. 이제는 그 다음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메뉴 선정. 기내식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한 열 몇 시간 전의 일이었을 터였다. 겨우 피곤에서 일어난 이후로 서로 첫 끼이기도 했고, 일단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마냥 있기에는 뭐한 일이었다.

 

주문부터 하고, 그 다음에 마저?”

마저.”

 

고개가 가볍게도 까딱여졌다. 단품이 나아? 배고프면 코스가 나을 거 같은데. 게다가 지금 시간이 시간이라서. 이 시간대에는 가급적이면 따로 시키는 것보다는 코스를 주문 후 그 안에서 시켜야 뭐라도 제대로 나온다는 걸 어련히 아는 생활의 지혜를 발휘하는 어른들은 이제는 건성으로, 시선을 둘 곳을 위해 살피는 게 아니라 제대로 뭐라도 먹기 위해 글자를 읽기 시작했다. 어서 주문을 해야 종업원도 편하고, 허기도 가시게 할 수 있을뿐더러, 이야기도 편하게 할 것 같아서였다.

 

음료는?”

.”

음료가 아니거든. 나 혼자 두 잔 마셔?”

뭐 있는데.”

 

2인 코스로 시키면 어련히 나오지 않으려나. 베른이 툭툭 자신이 보고 있던 메뉴판의 표면을 두드리면서 가리켰다. 음료와 스프에서부터 가격대에 따라 고를 수 있는 가짓수가 늘어나는 형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거의 여가랄 게 없는 사람들이었던 둘은 돈을 써봤자 저희가 어디에 써보겠느냐는 듯 그들은 메뉴만 슥, , 넘겨다보는 시선이었다.

 

단맛이 마냥 어울릴 것 같지는 않았던 탓에 스프로는 클램차우더와 어니언 스프. 클램차우더는 베른의 것, 양송이 버섯을 곁들인 어니언 스프는 플란츠의 것으로 고른 후에는 같이 나오는 식전 빵이었다. 올리브와 견과류를 넣고 구운 캄파뉴. 맛이라도 보라는 양 소스로 내어둘 차지키에 대한 이야기가 짤막하게 적혀 있었다. 이어 나오는 것들은 발사믹 식초, 허니 버터인 모양이었다. 비프 스트라미 대신에 해물을 넣은 샥슈카를 베른이 고른 대신, 샐러드를 잘 먹지 않고 해산물을 잘 먹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오가는 대화 사이에서 어련히 본인들의 취향을 반반 나눠서 고르는 메뉴들은 꽤 간단했다. 고개를 기울여 맞댄 양 가까워진 서로의 거리감은 까맣게 모르는 채였다.

 

샐러드는 페타 치즈를 얹고 제철 채소를 잔뜩 얹어 아삭한 식감 위주의 과일 약간 곁들인,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로 버무린 그리스식 샐러드. 그에 이어 굴에 카레 향을 살짝 얹은 밀가루 옷을 입혀 튀긴 굴튀김은 베른의 선택이었고, 레몬과 라임. 타르타르소스는 기본으로. 채소 본연의 맛을 조금 더 살리는 식의 작은 라따뚜이가 하나. 바질 페스토 파스타와 시금치 뇨키 중 후자로 고르는 것은 메뉴 선정 중에서 제일 오래 걸린 일이었다.

 

전체적으로 얹는 치즈는 향이 너무 심하지 않은 걸 사용해달라고 하는 것도. 디저트는 시럽을 넣지 않은 커피 한 잔과 베리 와인으로 만든 그라니타까지. 일단락된 것을 기억하여 주문하는 건 플란츠의 몫이었다. 주문을 받는 웨이터는 안내해주던 사람과 동일한 사람이었다. 주문을 적어 확인하듯 읊은 이는 확인을 받고는 멀어졌다. 점점 더 불어나는 사람들 덕에 나온다고 해도 조금 시간이 걸릴 게 뻔하게도 느껴졌다. 정말로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분위기. 워낙에 의식되는 일에 노출되어 있던 사람은 도리어 그 부분이 부조화를 느꼈다.

 

가끔 연예인도 온다고 했나. 그거 외에도 어디 회사, 재단 뭐 그런 데 높은 사람들도 자주 오긴 하거든.”

 

형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던 게 기억이 나서. 나도 그래서 아는 거고. 그래서 아마 우리가 뭘 하든 어디다 괜히 떠들거나 하지는 못할걸. 애초에 그러면 일 오래 못 하지, 어디서든. 어깨만 슬 으쓱이는 제스쳐에 플란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뭐부터 이야기해야 하더라? 느른한 물음에 이어서 따라놓은 물을 한 모금 마신 베른이 턱을 괴었다. 플란츠는 양해랍시고 서로 나누었던 것들을 생각하면서 참 돌연하다 싶을 만큼, 대뜸 말했다.

 

대응하지 말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우선은.”

 

사과를 하기에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지만, 조금 돌연하다 싶을 만큼 앞뒤가 다 잘라 먹혀진 말이라서 그가 고개를 슬 기울였다. 의문을 고스란히 표하는 얼굴은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의문이 자리할 뿐.

 

이거 그냥 두자고?”

 

반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양새가 순하기만 했다.

 

두자고.”

 

뭐가 이렇게 당연하고도 담담한지. 베른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말했기 때문일까. 플란츠는 더 긁어 부스럼을 내지 않으려는 양 문장을 가지런히, 아니. 문장이라고 해도 좋은 걸까 싶은 수준의 단어의 나열을 가지런히 둘 뿐이었다. 그냥 방치해도 나쁠 건 없, ? 없을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기는 했지만 생각이 도륵도륵 굴러가는 소리를 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제일 안 휘둘리고 좋을 거 같기야 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여겼다.

 

반응하는 순간에는 아마 뭐든 허점을 노려서, 그 허점으로 온갖 구설을 매달아 저희들 입맛대로 만들어서는 저희들의 자리에도, 새로 하려는 것에도 걸리적거릴 것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너무나 뻔하다고 느껴졌다. 물론 베른도 비슷한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면 한참이나 별 소리를 다 할 거 같은 느낌이 없잖아 있기는 했다고 여겼다. 으음, 하고 다물린 입술 안으로 굴러다니는 한숨인지 무언지 모를 소리가 맴돌았다. 주목이 끌린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을 이끌어내려고 들지에 대해서는 이후에 생각해서 좋을 부분은 아니지 않나 하기는 해서. 아주 현명하느냐 묻는다면 그건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반응을 하고 싶냐? 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고. 이렇게 대책 없이 모순적인 감상을 어디로 기울여야만 하는 건지. 괜히 헛웃음이 다 감돌았다.

 

이거 만난 것도 사진 찍히면 별 소리 다 들을 텐데.”

 

턱을 괴어서는 느른하게 들려오는 말에 플란츠가 제 몫의 잔을 들어 기울였다. 레몬은 아니고 라임, 이 아닐까 싶은 향이 입가에 가벼이 돌았다.

 

들을 거 생각하는데, 나도.”

 

너만 생각하는 거 아니라고. 그러니까 걱정을 굳이 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돌아오는 말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양 굴고 있기는 해서. 조금 웃음소리가 난 너머에서 툭 말이 던져졌다.

 

이상하게 전혀 아닌 거 같은데 정작 설득은 된다. 뭘까, 이게?”

 

의문이라고 하기에는 정작 물음이 아닌 목소리. 베른은 혼자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육성으로 말을 내어두었지만 플란츠는 낸들 알겠냐, 하는 표정을 드리운 채로 어깨를 으쓱이는 것도, 어떠한 제스쳐로 대답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었다. 표정이 그의 뜻을 전부 이야기하고 있었던 탓에. 그래, 너라고 알겠냐. 하는 기분으로 혼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까딱, 까딱, 큰 의미를 담지 않은 그대로 시선이 굴러갔다. 고뇌라고 하기엔 가볍고, 숙고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거운 생각의 뭉텅이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밀회니 뭐니 어디서든 이것저것 다 엮어먹을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아서. 그건 누가 봐도 뻔한 부분이라서. 플란츠가 생각하지 않는다고는 여기기 어려웠다지만 동시에, 그에 따른 걱정이 들지 않을 정도라고는 사실 생각하지는 않았더랬다. 굳이 크게 신경을 쓰고 싶지 않더라도 자신이나 상대를 보호하거나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이나, 최대한을 바라봐야 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에 반해 플란츠는 그런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군다고 봐도 좋을 정도의 태도. 용하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이것도 당기는 손의 일환으로 삼으려고 하는 건지는 모를 일이었다.

 

사과는 미리 하면서도, 잔뜩 휘둘릴지도 모르는 그 상황에 완전히 뛰어들자는 말에는 어떠한 덧붙임도 없는 모양새가. 지지부진한 것도, 흐트러지는 것도 아니라 마음에 들기야 했다. 어떻게 이러는 거지. 베른은 그게 너무나도 궁금해지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어디까지 보려고 드는 걸까. 이 사람은. 고요하게 가라앉은 표정을 하면서도 핑핑, 돌아가는 그 생각 속이 너무나도 궁금하다 싶기도 했지만 그걸 물어보지는 않으면서 사이에 놓이는 따뜻하게 데워진 캄파뉴를 손에 든 베른이 양손으로 쭈욱, 빵을 뜯어낼 때였다.

 

그러니까 나랑 하자고.”

 

어디로 튈 줄 모르겠다, 싶다고는 엄청나게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의외성이라고 해야 할까. 튀는 방향을 모르니 어떻게 수비가 안 되는 딱 그 짝이었다. 그래, 사람의 불길한 예감은 어디든 틀리는 법이 없다니까. 조금이라도 여유로운 생각을 할까 하면 아닌데, 하고 단박에 반박이 돌아오는 기분이 다 들고 있었다. 이거 참 미쳐 돌아가시겠다. 베른이 조금 전까지 뜯던 빵을 고스란히 내려놓으면서 마치 파격선언이라도 들은 것처럼물론 파격선언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대꾸했다.

 

뭐를 해. 아니, 당신 진짜 이렇게 오해사기 딱 좋은 말만 할래?”

 

우리 그거 일단 정할 겸 나온 것도 맞긴 한데 그래도 좀 기승전결이라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A를 말하고 있었으면 적어도 A‘까지를 가든, 적어도 B를 말하거나 하는 게 정석이지. 왜 갑자기 저기에 있는 XY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냐고. 베른은 조지게 골 때린다는 표정으로 대답했으나 플란츠의 표정은 여전하다 못해 너무나도 덤덤하기 짝이 없었다. 뭘 그렇게 당연한 소리를 하는 거냐는 식이라고나 할까. 아니, 뭐가 당연한 건지 누가 좀 알려주면 안 되나? 물론 그럴 기미랄 게 보이지 않기는 했다. 하여간. 꺾이지 않을 거라는 게 선했으니..

 

하자고.”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빼는 건지 모르겠다는 목소리로.

 

플란츠 브리센.”

 

좀 진정하면 좋겠다. 뭐가 문제인 건지? 그런 생각이 머리에 촘촘하게도 스칠 무렵, 플란츠가 대뜸 말했다. 그저 담담히 사실을 적시하는 것처럼.

 

당신한테 내 무게 같은 건 뭣도 아니잖아.”

 

어떻게 하면 이런 말 쪽으로만 골라서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하는 표정으로 마주하는 얼굴은 24시간이라는 시간 사이에서 서로의 별의 별 스펙트럼을 다 까 뒤집어보는 것만 같았다. 너무 날 것을 말하면 할수록 오해를 받기에는 좋다지만. 오해를 하든 말든 신경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이나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는 했다. 물론 지금은 제가 같이 휘말리려고 하니까 신경이 쓰이는 거고 아니라면 굳이 부득부득 생각해야 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못 드시나.”

 

차라리 도발이라면 걸리지도 않았을 텐데.

 

한 팔로도 들 텐데 무슨.”

 

그걸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툭, 뱉어낼 수 있는 이 사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를 않았다. 플란츠는 그러면서 뭘, 하고 말하는 대신 그저 빤히 베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습하면 되잖아. 당신 재활 지나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어차피 아무런 사이 아니라고 해서는 이미 내놓은 것들이 있으니까 못 믿을 상황이고, 나한테는 내 배경이. 당신한테는 당신 배경이 이걸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면 차라리 이용하는 게 당신 마음이 안 드실까. 느리게 말을 내어두면서 플란츠가 턱을 괴었다. 향을 내기 위한 민트 잎 조각이 동동 띄워진 물이 그나마 분위기를 상쾌한 척이라도 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틀린 말이라고 생각할 문제는 없었다. 다만, 조금은 이상적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 꿈같은 이야기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걷잡기가 어렵다는 감각이었다. 해본 적도 없는 것들을 시작하기엔 실패를 할 수 없는 나이가 아니었나, 나는. 저희는 그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마저 제어하기는 어려웠다. 조금은 가벼울 듯. 설득이 되어버릴 것 같은 쪽으로 생각이 기울다가도 애써 밀어내고자 굴어야 할 것 같은지 알 길이 없었다.

 

베른은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캄파뉴가 더 식기 전에 한 입 입에 넣고 잘게 잘린 견과류가 입안에서 바스라지는 식감은 썩 괜찮았다.

 

인정할 건 인정한다고 치고. 그래서. 나한테 해본적도 없는 피겨를 하자고. 그것도 페어를.”

 

상황을 한 번 정리해 건네는 듯한 목소리에 플란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통계적으로 은퇴 시기가 가장 느린 빙상 경기라고 해도 무관하고, 시기 같은 건 애초에 무관하다고 생각해서.”

 

나는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고는 생각 안 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왜 시선을 굳이 들어다가 서로를 마주 보는 건지. 그는 가만히 시선을 던지다가도 혼자서 다시금 고민하는 기색을 드리웠다. 중요도를 따져보는 것처럼 생각이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메달을 노리는 경기라는 지점이 중요한 페어 피겨 스케이팅은 빙상 경기에서는 노장이라고 불리고도 남을, 노장중의 노장도 메달을 노리니 경쟁 시합이라는 틀 자체를 깰 거 같진 않은데.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드는 생각이기야 했다지만, 입을 다문 채 조용히 고민하던 그가 자료라도 보여주며 설득을 할까, 말까를 떠올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말 보여주는 것도 묘하기는 했다.

 

실제로 그랑프리 파이널 페어에서 보면 동메달을 땄던 페어가 다음 해에 꾸준하게 그 이상의 메달을 따거나 하는 게 페어였고, 아무래도. 한 번 합을 맞추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것 정도는 플란츠도 이쪽을 생각하면서 딱히 모르지는 않는 부분이었다. 그건 누구라도 함께 하는 이상 동계 스포츠든, 하계 스포츠든 달라지는 지점이 없으리라고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굳이 따지자면 땅 위에서가 아니라 링크 위에서. 빙상 위에서 두 사람은 엄연히 말하자면 천재라 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실패하리라는 생각이 영 들지를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재능 자체를 믿는 것이기도 했다지만 재능이 노력 없이 유지될 거라고는 그도 생각하지 않았다. 고민과 고민, 연쇄가 주욱 엮어놓은 끈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베른은 아마 주위의 기대치도, 무엇도 이 대로면 이용당하기 싫어서라도 짜증스럽게 누구 하나 은퇴하는 결말일 수도 있다는 걸, 어련히도 눈치 챌 수 있기도 하기는 했다. 그건 분명 기존의 기대를 버리는 일이 되기는 하겠지만, 기존의 기대라고 할 수 있는 게 남아 있기는 했었나? 괜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것도 순간이었다. 어떻게 달리 수가 있을까. 그게 현 주소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어서. 느리게 눈을 깜박거려보던 베른이 조금은 묘하게 들뜬 것처럼 올랐던 기분이라는 게 아래로 느릿하게 눌러 깔리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시선이 슬금 옮겨가다가 깜박여졌다.

 

. 음식.”

 

플란츠.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녹색 눈은 의문처럼 왜? 하고 되묻듯 물끄럼한 시선을 그렸으나 그 역시도 아. 하고 깨달음이 이어졌다. 또 저도 모르게 조금 앞쪽으로 기울었을 플란츠에게 뒤로 물러나라는 양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굳이 사람과 가까이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던 건 아니라서. 플란츠 브리센 스스로도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뒤로 물러나 자리를 제대로 당겨 앉자, 음식을 밀고 온 웨이터가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요리들을 내려놓았다. 저희도 모르게 기울었던 몸들을 두고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잠시 아무런 말도 없는 채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것뿐이었다.

 

가지런히 식전 빵에 더불어서 샐러드가 내어지고, 적당히 나누어먹기 좋을 크기의 음식들이 어울리는 그릇에 놓이면서 각자의 앞에도 앞 접시와 내어졌다. 아무리 생각이 많더라도 식사는 해야 하니까, 베른은 핑핑 돌아가는 머리를 어떻게 걷잡아 볼 수 있나. 하면서 괜히 실없이 물었다.

 

튀김 먹어?”

해산물 잘 못 먹어서.”

괜찮은데, 이거. 그럴까봐 카레향 입힌 거라.”

 

이렇게 운을 뗀다면 그를 어그러뜨리지 않을 정도는 되면서. 부러 만들어낸 평범한 대화 사이에서 이걸 생각은 하고 있다는 지점에서 제가 좀 감기긴 했구나, 하고 그는 괜하지만 짚고 넘어갈 정도는 되는 깨달음을 안으로 삼켰다. 아니 애초에 모르는 사람이랑 굳이 이렇게 구설수에 오를 걸 뻔히 알고서도 나온 거 자체가 감긴 부분이기는 하지 싶긴 했다지만, 굳이 가늠할 부분은 아니었다. 파릇파릇한 사람이 파릇파릇한 것만 골라먹고 있는 걸 보면서 채식 위주로 먹나, 하는 생각이 잠깐. 그래서 말랐나. 하는 생각이 넘실넘실 이어졌다. 바삭한 튀김옷을 입에 넣고 씹다가 넘기고, 조금 고민하던 베른이 느슨하게 말했다.

 

그래, 하자. . 하자고.”

 

솔직히 생각하면 지금 기대를 받고 있다고 여겨지는 게 플란츠 브리센에게서 외에는 없다고 느껴져서 그런지는 모르고, 그렇게 생각하면 썩 그리 건전한 발상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상대방도 비슷한 셈 아닌가? 싶어서 내놓은 대답이었다. 너무나 여상한 목소리 사이에서 녹색 시선이 맞물렸다. 베른은 생각했다. , 생각보다. 충동적이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은 결정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