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 연성 회지 中 캐해석 발췌 (ㄱㅂㅈㅌㅇ : ㅇㅅㅊ 관계성 분석)

 

 하필 이 선배 둘은 다른 사람들이 보더라도 오~ 그들이 사는 세상인데~ 거리감 무엇? 하고 생각할 수 있을 법한, 굉장히 오래 함께 봐온 사이라는 점에서 장벽이나 심리적인 장해물 등이 있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이미 10년 정도의 시간으로 관계를 쌓은 사람들의 틈에 들어가기 위해 대놓고 시도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허창현은 강인석과 조신우를 두 사람만을 묶어서 '우리'라고 인식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가 하는 행동은 그들과 자신을 묶어서 '우리'인 것도 아닌 '인석 형님과 신우 형님과 나' , 이렇게 해서 '우리'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작 중 허창현은 기본적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물론 실제로 티라노사우루스와 알로사우루스를 맹렬하게 구분하는 고등학교 1학년(18세)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호의 영역, 좋아하는 것들을 말하는 이야기들과 별개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다니지 않는 것뿐이라는 이야기가 담긴 대사가 나올 정도로 눈에 들 정도로 '개인'으로 보일 수도 있고, 개별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상 역시 신유 고등학교 에피소드 이후 지상고의 시점으로는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하고 묻는다면 그렇게 두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가 명료하게 뒤따른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함께 다니지 않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일종의 예외가 되거나, 눈에 띈다는 선언임과 동시에 그렇게 긍정적인 시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그는 어떤가? 혼자 돌아다니다가 혼자 돌아갔는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미아보호소에서 겨우 아이를 찾아가는 것 같은 선배 둘에게 인도되었다. 혼자라고 말하는 듯한 사람을 늘 찾고 부르고 달래고 데리고 다니려고 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특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 특별함의 표출은 사람마다 별개인 것으로 획일화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허창현의 특별함의 표현은 어쩌면 명료하다. 강인석과 조신우를 대하는 방식 자체가 일종의 특별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대로 허창현이면서도 받아주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혹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방법은 과연 존재하는가? 그냥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아니면 떼를 쓰는 것처럼 굴지만 말투는 극존칭을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허창현이라는 존재는 상당한 개성과 특질을 가지고 있는 정말로 명료한 원석의 상태다.

 

 


 

 

  ▶  커미션 관계 분석/해석 발췌(FGO 베디비어 드림 관계성 분석 5000자 기준)

 

 2) 제외되고 열외된 어느 집단/세계에서의 사람들, 본질에서 오는 인연 (파트 전문)
 배경을 이야기하자면 우선 Y에 대해 짚을 필요가 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을 가까이 여기고 가족 등의 '집단'에서 두 번 제외된 존재다. 가장 가깝게 여겨졌을 '자리'에서 추방과 제거, 책임질 수 있는 권리 따위가 없음을 스스로 생각하며 수도 없이 제외를 셈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기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참으로 당연히 그것을 마주하는 게 도리어 힘들기 때문에. 그러므로 베디비어를 소환하게 된 것은, 다른 가능 세계에서의 랜슬롯 혹은 프로토타입 아서의 소환 이후 어떤 형태로 그들과의 관계가 남았는가를 생각해 보았을 때. 두 존재에게 희극인지 비극인지는 가장 처음의 접점에서는 정할 수 없다. 이후의 도움이 되었다 한들 그 순간, 대다수의 가능성 대신 희박한 지점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득인지 실인지. 처음에는 규정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베디비어는 어떠한가? 그는 이 세계에서 주로 드러난 베디비어의 모습은 1500년이라는 시간을 아서왕 하나를 찾기 위해 행동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건 간혹 인간을 보다 더 비인간적으로 보이게 하며, 영원히 헤매게끔 하는 성질이기도 하다. 충의의 기사라 불리는 존재이면서도 마음을 바치고 올바른 길을 나아가는 존재이되, 자신의 길이 어떤 고난이라 하더라도 행하는 자이다. 그는 원탁의 일각이지만 동시에 대적한 후지마루 리츠카와의 시간으로 볼 ‘역사’ 등을 가지고 있다. 칼데아에서 ‘정사의 베디비어’일 것이라 추측했던 것과는 반대의 결론이다. 그렇게 반대에 놓인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마음은, 감각은 엄연한 법이다. 자신이 아무리 품에 안더라도, 마음에 들이더라도 상대나 집단 따위를 채울 수조차 없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 거기에서 오는 감각. 그러나 두 사람은 이를 체념으로 마냥 누르는 대신 자리를 지키고 해야 할 일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은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는 생각을 져버리기 힘들었다. Y에게 베디비어라는 영령의 존재는 배척되고, 쫓겨나며 지워진 세 음절의 성보다도. 한 번 죽음에 이르렀으나 제가 온전히 설 수 없다 여기게 되었던 칼데아 자체보다도. 도리어 딱 올바르게 꿰어낸 것만 같이 멀끔하다. 희박한 가능성이 도리어 딱 들어맞는 경우는 몇이나 있을까. 무언가를 노리고, 꾀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까마득한 일이다. 두 사람은 그 까마득함을 두고 인연이라 이름 붙이기에 적합한 사람들이다. 새끼손가락에 맺어 놓은 것들은 아무리 멀더라도 결국 감고 감아서 한 가닥이었던 실조차 타래가 되는 법이다. 
  단정하고 명료하게. ‘나의’ 하고 시작할 수 있는 상대에게로 회귀할 줄 아는 것처럼. 

 

 3) 흔들렸을지 모르는 근간, 그러나 안정형 (파트 중 일부 발췌) 

 두 사람은 굉장히 신중한 이들이다. 특히나 마음으로 타인을 대할 적에 꽤 무겁게. 그렇다면 이 신중하면서도 명료하게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생각해 보게 되지 않겠는가? 어떻게 상대를 대해야 할지, 어떻게 헤아려야 할지를 말이다. 두 사람은 소중히 하는 것을 아는 이들이다. 알다 못해 그 깊이가 한없이 무겁다. 심지어 두 사람이 놓인 세계는 완벽하지 않고 안전하지 않다. 입지 또한 매한가지다. 두 사람은 시간이 필요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게 과거의 방향이든, 미래의 방향이든. 제대로 생각하고 손가락을 얽고 마주할 만큼 인연이 강화될 시간이. 유리의 마술속성은 물 다음이 허이다. 있을 수 있으나 없는 것. 흐르나 돌아오는 것. 이 둘은 모순 사이에서도 존재를 증명한다. 유리의 마술속성은 베디비어의 위치와 그녀가 내린 명령과 닮아 있다.

  충동으로 시작한 관계에 충동 외에 남지 않는다면 이미 기반도 – 위험도 자리하고 있는 세계에서 굉장히 큰 위험으로 작용할 것을 모르기는 어렵다. 소환한 본질/원인조차 충족하지 못했을 테지만. 그러나 베디비어의 마스터는 자신의 충동보다 안위와 유지에 대해 안위 자체에 대한 걱정과 이성적인 판단을 가진 채 행동이 가능한 사람이며 유리의 서번트는 그런 마음을 헤아리고, 우선해야 할 것을 마음 깊이 두되 그녀 역시 내버려 둘 사람이 아니다. 이 관계의 중심은 분명 곁에 있기를 바라 쥐고 있음을 전제할 것임에도 명백한 모순은 두 사람을 아이러니하게도 지키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유리는 더욱 당연히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다치지 말고 다녀와요. 나의 세이버. 하고.

  내어주더라도 무게가 어디에 놓여 있는가. 누구에게로 돌아와야 하는가. 이를 모를 수도 없고, 무시하지도 않을 사람들. 자신이 선택하는 것 이상으로 고찰하고 떠올리되 서로의 소문과 지점 사이에서도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들. 만 개의 갈래로 나뉘어진 시간에서의 단 한 번 잡은 손은 이후로도 손이 맞잡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현재는 두 갈래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도 있는지 모른다. 딱 한 줄 적혀 있는 필연적 역사 혹은 모든 세상사의 역사로 남는 것과 같듯 인간의 의지로 바꾸어 운명을 뛰어넘은 것으로. 그러나 굳이 따지지 않아도 둘 모두인 것이 아닐까. 두 사람의 연은 어느 방향으로든 작용하는 것이 되었으며 이는 명백히 선택으로 작용하였으니. 소환 역시도 이례가 아닌 단 하나의 연을. 제 곁에 있을, 있어 주어야만 할 이의 곁으로 왔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느리지만 두 사람의 현재에 가장 어울리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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