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창작 개인 연성 : 세포신곡. BL. 막간CP.
하여간 그러한 이유로,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애매할 정도의 설득력으로 인하여 지켜보는 스탠스를 거부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 봐도 과언은 아닌데……. 루메르트의 속은 그렇게 편하지 못헀다. 물론 ‘그’ 하라다 무테이의 조언이었다. 어딘가 탐탁찮은 기분이 든다 싶은 구석이 있는 건 상대 본인이라 해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싶을 심정이다. 지켜보는 거 나쁘지 않지. 맞는 말이기는 했다. 지금은 기말고사 준비 기간이었다. 과제에 치이는 시기라는 것도 있지만 슬슬 기말이었다. 그 말은 뭐냐. 신경 쓸 게 어지간히도 많다는 뜻이었다. 시험은 어떻게 볼 건지, 과연 테트리스가 어떻게 돌아갈지. 하루에 시험을 다섯 개 정도 보지는 않을지. 온갖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도 과언이 아닌 판에 본인이 여지를 준, 어떻게 보면 스스로 판 무덤에 신경을 내내 쓸 여유라는 게 없어야 정상이었다. 물론 자신의 안에서 괜히 막혀서는 지지부진하다 싶은 생각을 적당히 넘기고 싶은 그런 종류의 마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온갖 이유를 죄다 덕지덕지 붙여두고 나서야 정리가 된 속내는 여전히 얼기설기 엉킨 감이 있었지만, 나름 괜찮은 태도를 보일 만큼은 되었다.
그렇게 마음을 조금 먹고 나니 보이는 건 생각 외로 없지는 않았다.
물론 로맨스 소설의 법칙 같은 건지, 아니면……. 아? 이거 읽으면 안 돼? 알겠어. 애초에 내 이야기도 아니구나. 저기요, 가브리엘 씨! 계속 메타발언 하실 거냐고요! (작성자의 사정으로 현현이 허가되지 않은 문장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낭만의 법칙 같은 건지 뭔지는 모르겠다지만 ‘좋은’ 종류는 결코 아니었다. 언제나와 다를 바 없는 루틴. 나란히 얹는 것도 당연히 이상한 일이었던 탓에 마주 앉아 두고도 그는 이쪽을 볼 생각을 안 하는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차에 앉아 있을 때까지는 등 돌리는 걸 잊는 사람처럼 굴더니, 지금은 또 뭔지. 눈 마주치는 걸 조금 줄여보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저 동글동글한 붉은 눈은 들이 밀어진 글자만 읽어가며 2년을 다 채워가는 와중에도 제가 통역을 도맡고 있었다. (읽는 것과 말하는 건 별개라나, 뭐라나.)그래서? 주춤. 고개가 들어 올리려다가도 스스로 알아서 브레이크를 잡은 게 선하게도 보였다. 루메르트는 생각했다.
무테이, 이게……. 지켜봐서, 될, 될 일이기는 할 거 같냐? 아니.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낫기는 하겠지. 될 일이 아니라고 속삭이는 듯한 상황만 내내 계속되고 있는 판에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건가? 되는, 거냐고? 의미도, 의도도 알 수 없는 이 대쪽 같지 않은 바람 앞 스카이댄서 같은 태도를 어떻게 해야 하나……. 스스로 생각해도 이게 뭐 줏대도 없어, 중심도 없어, 일단 그냥 어떻게든 맞추어져서는 끼릭, 끼릭, 돌아가는 꼬락서니와 대체 무엇이 다른가 싶은 기분이었다. 그냥 속 시원하고 물어보면 될 것을, 그렇게 말한 이후 뚝 끊겨버린 말이나 표현을 앞에 두고 굳이 후벼 파는 짓을 하는 건 엄연히 이상할 뿐더러 결코 취향도 아니었다. 희망고문이냐? 무슨 사랑 받지 못해 애걸복걸하는 사람도 아니고. 현실이니, 테오도르 리들이니. 끊임없이 매달아 본 건 저 본인인데 그걸 도로 들어 보이면 그것도 참 양심 없을 일임을 루메르트는 모르지 않았다. 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볼 적에는 굳이 떠오르지도 않았던 것이 외부에서 한마디 얹었다는 이유 하나로 사람의 속을 쿡, 쿡, 누르기를 반복해댄다.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르지. 생각해보면 좋은 건 좋은 거고, 관계가 변하고 싶지는 않다거나? 10번이 넘는 거절의 앞에서는 그만 두라며 이야기를 한 루메르트의 쪽이다. 그러니 머리 쓰는 건 전혀 자신분야가 아니라 하는 남자가 이리저리 결론이 날 법한 요소들을 한 데에 모두 몰아넣고 죄다 뒤섞어다 둔 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한다. 결론이 날 건 다 나다 못해 복잡했던 생각이 저 조막만한 머리통 안에서 어떻게 잘 정리라도 되었다면 적어도 그에게는 그러려니 할 필요가 있었다. 세오도아가 말하는 한이 있어도, 루메르트 만큼은 건드려서는 안 될 부분이라는 것도, 나름. 나름이기는 했지만! 양심적으로 잘 가져다 끼고 있는 하나의 부분이 되고 있었다.
정작 무의식적으로 빠지고 있던 당시의 생각에 대해 그는 훗날 단 한 마디도 해주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죄 그 ‘루메르트 오토마이어답지 않은’ 생각들을 이야기해주었다는 것도 하나의 여담이었다. 물론 세오도아 역시 조잘거리는 덕에 그 비율을 따지자면 그래봤자 기묘하게 4.5:5.5라는 비율이 되기는 했지만, 하여간 그랬다. 물로 미래의 일은 미래의 일. 현재에 놓인 남자는 상대의 일상적이기 짝이 없는 표현들에 저 스스로가 과히 익숙해져 있던 건 아니었을까? 를 고민했다. 여전히 이쪽으로는 고개를 어쩌지도, 눈을 두지도 못한 채 메뉴판에 콕. 고개를 쳐박고 있는 세오도아에게 건성으로 대답을 내어두고 나면, 끄덕임이 그 자리에 남는다. 이거는요? 저거는요? 좋아하는 건 확고한 주제에, 편식을 크게 하는 편까지는 또 아니라서 (사람은 사시사철 언제나 늘 매일 애플파이만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건 세오도아 리들, 그 본인도 참으로 잘 알고 있음을 언젠가의 그는 감사할 정도의 부분이었다지만.) 조금 더 까다로운 사람에게 메뉴를 맞춰주는 물음이었다.
“안 보인다.”
“으응?”
다른 쪽을 곁눈질하며 적당히 크게 걸린 메뉴판을 따라 대답인지, 아닌지 모를 것을 두고 있던 루메르트가 ‘이거’가 뭔지, ‘저거’가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상황에 기어이는 생각을 누르고 현실로 복귀했다. 이 나름대로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내고 있는 친구 아닌 친구 녀석은 그건 예상 못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슬그머니 고개를 뒤로 빼는 모양에 픽, 웃어버린 그가 숨을 골라냈다. 미안. 안 보일 줄은 몰랐네. 됐다. 뭐가 뭐라고? 이거, 빵은 저번에 브레첼이 생각보다는 별로였다고 했던 거 같아서요. 그에 비해 조금 정도는 작은 손이 코팅된 종이 위를 움직인다. 브뢰트헨은 없고. 깡파뉴가 루츠 씨 취향에는 더 맞지 않으려나 했어요.
“아니면 로겐브로트? 이건 다른 거에 비해서 실패하기도 어려우니까.”
여전히 얼굴은 바라보지 못하는 모양 그대로. 세오도아가 시선을 데굴, 데굴, 복잡함을 담은 채로 굴려냈다. 고개를 끄덕이면 다음 메뉴의 선정이었다. 종알종알. 푸드 펍의 특성 상, 아무래도 식사를 겸한다 한들 소위 말하자면 ‘반주’ 같은 느낌이 드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보니. 물론 두 사람에겐 다른 사람들보다 이런 분위기가 익숙한 편이었다지만 플래터의 구성으로 식사의 방향성을 어찌 잡을까 고민하는 두 고개가 결국에는 메뉴판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맞닿을 것처럼 좁아졌다. 너 살라미 잘 안 먹지. 으음, 일본에서는 별로 안 맞네. 생햄은 어때요? 하몬 세라노? 네. 나쁘지 않은데 저녁이라서. 뒤적이듯 한 번 메뉴판을 넘겨보는 손은 꽤나 익숙한 것이다. 구운 소시지 종류는? 괜찮지. 브라트부르스트! 세오도아의 목소리와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그를 향한다. 루메르트는 그걸 알면서도 굳이 의식하지 않으려 무던한 애를 쓰고 있었다.
“뉘른베르거 쪽이지?”
튀링거는 조금 매워라 했던 걸 떠올리며 고개를 얕은 폭으로 까딱인 그가 메뉴를 간단히 메모했다. 제가 해도 되는데요, 하는 목소리는 어련히 무시한 채였다. 소시지도 추가해? 추가한다면 그건 루츠 씨 취향으로 골라요. 왜 아까부터 나한테만 묻고 있냐고, 당신. 냉큼 시선을 붙인 건 마음에 차는 모양인지. 빠아아안히도 바라보고 있는 주제에 목소리는 볼멘소리에 가깝게 물든다. 루메르트는 깔쌈하게 말했다.
“비너로. 너도 무난하게 먹잖아.”
“무난한 거 시키네요. 플래터 치즈 선택은 늘 하던 대로 할게.”
만체고, 체다, 생 모짜렐라를 체크한 주문서는 대망의 마지막 메인 메뉴 선정을 남겨두고 있었다. 아무리 빵이 주식인 유럽권 사람들이라고 해서 아침부터 지금까지 대학교 건물에 온종일 쳐박혀 있던 사람들의 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인 법이었다. 게다가 플래터는 안주는 몰라도 마냥 기별이 간다 싶은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3인 기준으로 시켜도 식사로는 부족하다 싶은 감이 있었다. 메인 메뉴라고 쓰고, 식사 메뉴라고 읽는 게 분명한 메뉴판의 마지막 장에 콕, 얼굴을 또 다시 쳐박은 세오도아가 시선을 데굴데굴 굴렸다. 정작 나오는 말은 전혀 다른 쪽이다.
“그나저나 슬슬 슈톨렌 먹을 시기네.”
크리스마스 디저트라는 느낌으로 사기 쉬울 거 같은데, 정작 와서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는 살까 해요. 아마도 사운드가 빌 일이 없는 이런 자리에서는 침묵보다도 다른 걸 생각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제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어색하다고 여기게 된 건지. 괜한 말이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양. 마냥 또렷하지 않은 목소리는 부유하는 것처럼 둥실둥실거린다. 루메르트가 그를 바라보았다. 가벼이 괸 턱. 그럼에도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방향이다.
“다 남기려고?”
“시끄러. 내가 사고 내가 남기는 거잖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랬다가, 저랬다가. 기분인지 감정인지 모를 건 어째서 이렇게나 쉽게 바뀌다 말다가를 반복하는지 조금은 가늠을 하다가도 놓치게 된다. 스튜? 그렇게 되면 너무 고기 류잖냐. 해산물 쪽이 나을 거 같은데. 오늘은 어쩐지 엄청 잘 챙기게 되는 느낌이네요. 오늘 1교시였지? 그래. 점심도 거의 넘겼으니까. 뭐라도 사갈걸. 점심 연습이어서 저도 넘겼어요. 뭐어. 그러니까 저녁에 남자 둘이 메뉴에 목숨 걸고 있는 거겠지만. 어깨가 으쓱여진다. 소거법처럼 넘기는 메뉴 사이에서 남는 건 듣자하니 슬슬 끝물이라는 새우 철에 어울리는 페페론치노의 맛이 조금 강한 감바스 알 아히요. 물오징어 뭄통과 홍합, 동죽에 흰다리 새우를 넣어 과하지 않을 정도로만 익히는 치오피노. 단 두 개였다. 하나는 아예 시즌 메뉴네. 슬슬 새우 만지기도 귀찮아졌다, 이건지. 2년 정도 학교 근처라고 오게 되면 적당하니 알아차리게 되어버리는 것들 사이에서 검지 끝으로 툭툭. 치오피노를 고르자 세오도아가 주문서에 가볍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여기, 주문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뱉어내던 그의 모국어는 온데간데없다.
한사코 말해도 결국 남는 건 언제나의 주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종업원에게 건네는 주문서를 다시 한 번 설명하는 목소리에 오가는 태도는, 루메르트에게 보이는 것과는 엄연하게도 온도의 차이라는 게 보인다. 그렇게 하나, 하나, 빠른 속도로 테이블 위에 놓이는 건 여태껏 말해왔던 것들이었다. 익숙한 맛과는 아무래도 조금 다른 터라 호밀 비율은 조금 아쉽지만 깨에 겉을 굴린 깡파뉴는 가볍게 더워 속이 생각보다 부드럽게 뜯긴다. 얇게 썬 하몬 세라노와 구운 소시지로 이루어진 플래터는 긴 접시로 테이블 한 구석을 채워낸다.
브라트부르스트와 비너 소시지 중 후자에는 조금 칼집을 더 내어 달라 뒤늦게 메모가 들었다. 치즈는 언제나와 다를 바 없이 특유의 향이 있는 얇게 밀어 하몬과 얹어 먹기 좋은 만체고와 체다, 서비스로 나오는 샐러드는 양배추보다는 양상추의 비율을. 드레싱은 발사믹 (이전까지는 세오도아의 취향에 맞추어 사과가 조금 더 들어간 과일 위주 소스를 선호했지만, 치즈와 따로 노는 탓에 최근 노선을 틀었다.) 식초와 올리브 오일을 1:1 정도의 비율로 섞어 생 모짜렐라와 곁들일 수 있도록. 메인으로는 이태리식 해산물 스튜인 치오피노가 가운데를 채우는 데에는 몇 분이라는 시간이 굳이 걸리지도 않았다. 아직 사람이 덜 들어온 시간이라 새로 조리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가벼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루메르트 역시도 세오도아를 따라 식기를 들었다. 무슨 대화를 하고 있었더라. 생각과 현실이 동시에 흘러가지 않는다 여기는 건 자신이 집중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 아닐까. 빵을 한 입 크기로 뜯어내는 손이 제 접시 중 둥글게 안으로 담기지 않는 쪽에 내려다 둔 채로 구워 나온 비너 소시지를 포크로 집어 들고 온다.
“그런데 갑자기 슈톨렌은 뭐냐. 괜히 한 말은 아닐 테고.”
크리스마스에 일정 있냐고? 세오도아는 순간 움찔, 제 어깨를 떨었으나 으으으음. 하고 입을 다무는 소리를 냈다 대놓고 티가 나는 틈인데도.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남자는 참으로 뻔뻔하다. 물론 본디 뻔뻔한 녀석이기는 했지만?
“그을쎄요. 아무것도 아닌, 쪽이려나. 일단은 그런 느낌.”
“일단은 뭔데. 똑바로 말해.”
뻔뻔하면 어쩔 거냐고. 딱 잘라 말하는 목소리에 입이 꾹 다물렸다. 먹을 거면 먹고, 복잡한 생각이든 마음이든 무슨 태도를 보일 거면 보이고 하면 될 문제인데. 그 좋은 힘으로 브라트부르스트를 자르는 나이프가 접시에 기다란 소리를 내었다. 세오. 앞으로 꾸욱, 눌렸던 나이프가 뒤로 힘을 빼며 돌아온다. 맞추지 않는 눈은 여전하다. 의식하고 있어요! 하고 광고를 하는 듯한, 그 표정이다.
“똑바로 하고 있는 거라고요. 그래도 뭐라고 할까……. 크리스마스에 일정 있는지 궁금한 건 맞는 쪽일지도.”
“맞아, 틀려.”
“네에, 네. 맞는 쪽입니다. 그 정도는 넘어가줘도 괜찮잖아요.”
굳이 그렇게 받아내야만 하나. 한 입 크기로 잘린 것이 입으로 홀랑 들어간다. 왜 물어보는 건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어련히 좋은 머리는 완벽한 연말 범위 안의. 세오도아의 ‘크리스마스’ 일정을 어렵지 않게 떠올려냈다. 정확히는 크리스마스 당일이 아니라 이브의 일이기는 했지만.
“음대 연주회가 이브였지, 너.”
“기억하고 있었어?”
세오도아의 고개가 홱 올랐다. 대뜸 가까워진 감이 있는 얼굴에 루메르트의 눈이 그 못지않게 동그랗게 변모하다가도 제자리를 찾는다. 약간 그런 기분이었다. 어떻게 알았어!? 하고 묻고 있는데, 당연히 알지. 네가 내 귓가에 대고 말했잖아. 하고 말하는 그 인터넷 개그 일화 같은 거 말이다. 대학 내 포스터만 9월부터 보고 있었던 판에 모르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3학년이었다. 작년에도 갔고, 재작년에도 갔다. 그런 와중에 3학년에, 어지간히 주목 받고 있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퍽이나 그 날에 독주 시간을 배정받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나. 슈톨렌 이야기는 어쩌면 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서두였던 건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는 했다지만…… 루메르트는 어쩐지 그런 기분에 휩싸였다. 은근히 말을 돌릴 줄 알게 된 걸 다 컸다고 좋아해줘야 하는지, 아니면 가뜩이나 손도 많이 가고 성가신 감이 있는 녀석이 더 그러려고 하느냐며 괜한 소리 한 번 붙여봐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모르기도 어렵다. 왜, 그래서.”
난 일정 없어. 기말고사 준비나 하고 있겠지. 겨울 방학이니까. 과제는 그 시기 언저리에 어련히 다 끝날 예정이었다. 동아리에서 괜히 남자 네 사람이 머리 맞대고 과제 두드리고 있는 건 아니니까. 오라는 건가? 아니면, 무슨 말을 할지. 세오도아가 했던 말 만큼이나 저 역시 고민은 하고 있는 모양새가 되어버리고도 남은 남자는 입을 다문 채 숨을 짧게 골라냈다. 말하지 않으면 가지 않을 생각이고, 말한다면 당연하게도 갈 생각이 들었다는 건 무슨 마음이라 표현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잘 익어 시원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토마토소스가 스푼을 따라 입안을 따뜻하게 데우고 넘어간다. 고소한 빵이 침묵을 따라 잇새에 뭉그러졌다.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무언가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건지. 슬슬 고민이라도 끊어내지 않으면 나이프질 한 번으로 접시를 깨먹을 것만 같은 세오도아가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그 작은 달싹거림은 루메르트 역시도 보이는 형태였다. 물론 그렇다 한들, 사람은 독심술을 쓸 수는 없는데도. 오히려 눈치 채지 못하기를 바랄지.
“그냥……. 음. 아직 시간 좀 남았으니까 그 때 다시 물어볼게.”
지금은 어쩐지 준비가 덜 된 기분이 들어요. 어쩐지 소탈한 감마저 있는 목소리는 사람을 어딘가 기묘하게 자극하는 느낌이 있었다. 물론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 그냥 그게, 뭐라고 이렇게 기묘하게 느껴지는 건지 알 길이 없다? 딱 그만한 의미라고나 할까. 루메르트는 마치 줏대를 정해다 두었던 사람처럼, 이미 내려둔 두 가지의 갈래 사이에서 우선은 ‘가지 않는다’ 쪽에 손을 들었다. 말하지 않으면 맞춰줄 필요까지는 없고, 그건 이전에도 그가 세오도아에게 말한 적 있는 문제였다.
“준비를 하고 있는 줄은 몰랐네.”
가벼운 농담은 그럼에도 어딘가 짓궂은 무게를 담고 떨어졌다. 왜 그런 기분이나 표정이 되었는지는 저 스스로도 모르면서, 루메르트는 그리 짙지 않은 무게감을 식사의 순간으로 무마하듯 덮어냈다. 반대편에서는 양상추를 괜히 뒤적거리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무슨 의미인데.”
어쩐지 그 목소리는 조금은 기대하는 것처럼, 그러나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조금씩 비실비실 새어나오는 걸 곁눈질하는 행위 그 자체를 닮아 있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본인이 미적지근한 대답을 내놓은 만큼 루메르트에게는 완벽히 의도가 드러난 답을 내어주어야 할 의무가 없었다. 으쓱여지는 어깨. 결국 얄미울 정도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얼굴을 두고 푸욱, 익은 얼굴을 하는 건 세오도아의 몫이었다. 얼른 먹기나 해. 그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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